현민의 『감옥의 몽상』서평 남성성이라는 이름의 함정 ::

현민의 『감옥의 몽상』서평: 남성이라는 이름의 함정

나는 진짜 남자다. 군대 다녀온 진짜 남자 군대 안 가면 그냥 남자…’ 2013년 인기리에 방영된 MBC 예능 프로그램 ‘진짜 남자’에 출연한 가수 손진영은 ‘한국인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을 위와 같이 바꿔 불렀다. 많은 남성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는 평가를 받은 이 곡은 그 인기에 힘입어 정식 음원이 발매됐다.

우리 사회에서 군대는 곧 소년에서 남성으로의 진화를 의미한다. 남성은 자신이 진짜 남자가 됐음을 입대해 증명해야 한다. 군대에 가지 않은 남자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미숙한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철없는 행동은 “쟤는 군대 다녀와야 정신 차려”라는 말이 붙는다. 20대 초중반에 남자가 되는 것을 제대로 실천했는지는 삶의 대부분 기간 그를 평가하는 하나의 꼬리표가 된다. 누군가 자신이 해병대를 나왔다면 당연히 존경의 눈길이 따라오듯 말이다.

저자는 집단주의에 반기를 들고 입대를 거부했다. 그에게 완전한 개인이란 ‘나다움을 잃지 않는 존재’였다. 그가 자기다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집단주의를 탈피해야만 했다. 본인을 페미니스트로 정체성화한 저자에게 집단적 군대생활은 남성성 학습과 분리해서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병역 거부를 한 저자가 군대를 대신 간 교도소 또한 다른 남성성 학교였다.

교도소를 군대와 똑같다고 할 수는 없다. 교도소 내에서는 챔버프로 인한 지위 상승을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래 복역한다고 서열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 때문에 교도소 내에는 항상 위계의 불안정성이 자리 잡고 있다. 오히려 이 불안정성으로 수감자들은 군대보다 압축적이고 효율적으로 남성성을 학습한다. 이들은 군인보다 열심히 힘을 과시함으로써 남성성을 수행한다. 근육을 보여주거나 자신의 왕년의 행보를 자랑하는 식이다. 이처럼 남성이 되는 것을 꾸준히 실천하고 있음을 온몸으로 증명하면 서열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할 수 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남성성이 곧 인간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위계 구조에서 배제되지 않기 위해 남성성 수행은 필수다.

국가는 수인간의 서열 경쟁을 알면서도 침묵한다. 위계 정립은 남성이 모이면 반드시 일어나는 정상적인 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병역거부자는 1년 반 동안 다른 죄수들과 함께 수감된다. 그 과정에서 병역거부자들은 군대와 마찬가지로 남성성을 학습한다. 군대에 가지 않았지만 더 독한 군대에 간 것과 같다. 이들에 대한 대체복무 논의 없이 국가는 이들을 교도소로 보낸다. 이는 남성성 기획을 통과하지 못하는 단 한 명의 국민도 없도록 하겠다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

1년 6개월 이상 실형을 받은 죄수는 군대에 갈 수 없다. 따라서 많은 죄수들은 군대에 가지 않았다. 남성성을 거부하는 저자의 모습은 군대에 가지 않은 죄수들 사이에서도 눈엣가시였다. 특히 그는 비여호와의 증인 병역거부자라는 점에서 수감생활이 쉽지 않았다. 종교적 이유가 없는데도 입대를 거부한다는 것은 다른 죄수들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입대 거부와 남성답지 않은 말투 등으로 인해 저자는 감옥에서 겁 많은 ‘비남성’ 즉 여성으로 취급됐다. 그는 자신이 여성화하고 있음을 인지했다. 그러나 별다른 저항은 하지 않았다. 대신 인생에서 엇갈린 여성들을 환상 속으로 불러내 그리워함으로써 자신의 남성성을 보완했다.

교도소에는 소지라는 잡역부 직책이 있다. 소지자는 상대적으로 죄가 적은 여호와의 증인으로 구성된다. 그들은 교도관이 처리하려면 여성적인 일을 맡아 간수의 남성성을 유지한다. 예를 들어 죄수들에게 약을 가져다 주거나 편지에 대한 검열 등을 대신하기도 한다. 동시에 소지자들은 수감자들을 돌본다. 수감자들이 교도관을 돌봐야 할 무력한 대상이 된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간수와 죄수의 남성성을 지키기 위해 두 그룹 사이에 ‘비남성’ 즉 여성을 탄생시킨 셈이다.

비남은 곧 여성과 동의어로 여겨진다. 남성성은 성별 자체만으로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남성성은 여성적인 것을 비하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나약함 눈물 공감과 의존 등 비남성적 속성은 여성적인 것이 된다. 이러한 속성은 여성의 것이므로 멸시당하고 냉대를 받는다. 이때 남성성은 생득적인 특질이 아니다. 특정 속성을 밀어냄으로써 얻어지는 왜곡된 증상이다. 수감자들은 이런 증상적 남성성을 끊임없이 드러냄으로써 남성이 되는 것을 실천해야 한다. 남성성을 성실하게 수행하지 않으면 이들은 여성으로 전락하고 만다.

군대가 남성성을 전수하는 집약체라면 감옥은 집총하지 않는 군대다. 감옥에서도 군대와 마찬가지로, 아니 군대보다 압축적으로 남성성 전수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남성성의 기획과 추구는 군대와 감옥뿐 아니라 사회 전반을 관통한다. 가족, 학교, 회사 등 전 기관에 걸쳐 남성성이 전수되지 않는 곳은 없다. 남성은 일상 속에서도 남성성을 검증해야 한다. 슬픈 영화를 보고 울지 않았는지, 목욕탕에 당당히 갈 수 있는지, 힘이 세고 근육이 붙었는지,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지 등의 검열은 상시 이뤄진다. 남성임에도 항상 남성성을 입증해야 한다는 사실은 남성성이 그들의 본질적 속성이 아님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2001년 오태양씨가 비여호와의 증인인데도 병역을 거부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그로부터 19년이 지난 올해 초 들어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를 허용하라는 헌법재판소 판결이 나왔다. 이는 병역거부자의 인권침해를 막고 이들의 이름 뒤에 전과자라는 오명을 없앤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하지만 여전히 이들의 대체복무 장소는 교정시설을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다. 군대가 아니면 교도소 2명 중 1명을 꼭 보내서라도 남성성을 가르치겠다는 국가의 기획은 아직까지 성공적으로 수행 중이다.

서평서 강좌에서 냈던 서평을 좀 더 고쳐봤다.시간이 한참 지난 뒤 다시 보니 왜 글이 불친절하다는 얘기를 들었는지 알 것 같아 몇 가지 설명을 더 덧붙였다.

이 책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개인적으로는 저자가 뒷면에 올린 ‘감옥으로부터의 몽상’ 서평이 매우 흥미롭다.신영복의 책을 여성학적으로 분석한 글이다.감옥에서 온 몽상을 읽으신 분은 이 책 뒷면의 서평을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