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8월 11일 오전 8시 8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는 남미 기아나 쿠루 우주기지에서 프랑스령 가이아나 우주국의 지원을 받아 소형 과학실험용 위성 우리별 1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했습니다. 그리고 3개월 후인 11월 21일 오후 3시 10분경 지상과의 첫 교신에도 성공했습니다. 이는 한국 최초의 국적 위성으로 세계 22번째 자력 위성 보유국이 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우주개발 분야 선진국들은 군사적 목적이나 상업적인 이유로 대형 로켓 개발에 집중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소규모 실험용 위성 제작 기술력 확보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정부와 학계, 산업계가 힘을 모아 연구개발에 매진한 결과 마침내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또한 이를 계기로 향후 독자적인 우주산업 발전 기반 마련 및 국가 위상 제고 측면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에 쏘아 올린 해당 물체 안에는 어떤 기능이 탑재되어 있었을까요? 우선 무게 48.6kg, 크기 352×356×670mm 수준으로 태양전지판 2곳이 설치됐고 임무 수명은 5년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카메라의 해상도는 6.6m급으로 자세 제어 시스템 등 다양한 첨단 장비도 장착되어 있었습니다. 한국 최초 인공위성 우리별 1호 1992년 8월 11일 오전 8시 8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는 남미 기아나 쿠루 우주기지에서 프랑스령 가이아나 우주국의 지원을 받아 소형 과학실험용 위성 우리별 1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했습니다. 그리고 3개월 후인 11월 21일 오후 3시 10분경 지상과의 첫 교신에도 성공했습니다. 이는 한국 최초의 국적 위성으로 세계 22번째 자력 위성 보유국이 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우주개발 분야 선진국들은 군사적 목적이나 상업적인 이유로 대형 로켓 개발에 집중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소규모 실험용 위성 제작 기술력 확보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정부와 학계, 산업계가 힘을 모아 연구개발에 매진한 결과 마침내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또한 이를 계기로 향후 독자적인 우주산업 발전 기반 마련 및 국가 위상 제고 측면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에 쏘아 올린 해당 물체 안에는 어떤 기능이 탑재되어 있었을까요? 우선 무게 48.6kg, 크기 352×356×670mm 수준으로 태양전지판 2곳이 설치됐고 임무 수명은 5년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카메라의 해상도는 6.6m급으로 자세 제어 시스템 등 다양한 첨단 장비도 장착되어 있었습니다. 한국 최초 인공위성 우리별 1호
한편, 현재 운용되고 있는 후속 모델로서는, 1999년 5월 26일에 발사된 2호기와 2003년 9월 27일에 발사된 3호기의 2 종류가 있습니다. 각각 지구 표면 촬영 영상의 전송뿐만 아니라 음성 통신까지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한편, 현재 운용되고 있는 후속 모델로서는, 1999년 5월 26일에 발사된 2호기와 2003년 9월 27일에 발사된 3호기의 2 종류가 있습니다. 각각 지구 표면 촬영 영상의 전송뿐만 아니라 음성 통신까지도 가능하다고 합니다.